오마이뉴스에 올라온 이명옥님의 글(기사)입니다.
절절한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아서 올려봅니다.


  
18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지난달 26일 오후 노원구 상계동 중앙시장 인근을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유성호
노회찬

선거 전 불어온 이상기류로 맞은 첫 직격탄


나는 '노원 병'이 속한 상계 3동 주민이다. 노원  병 총선에 불길을 더한 것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두  후보들이었다. 오랫동안 노동운동에 몸담으며 민주노동당의 간판스타로 인식된 진보신당 공동대표 노회찬씨와 하버드대를 졸업한  젊은 기업인, 출중한 용모 등 개인적 능력을 과시할 만한 홍정욱씨가 한나라당 전략 후보로 노원 병에서 경합을 벌이게 됐던 것이다.


4월 9일 총선의 뚜껑이 열리자 어느 곳보다 치열했던 노원 병에서 노회찬 후보는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에게 겨우 3% 차로 패배의 쓴 잔을 마셨다. 늦은 밤 노회찬씨의 패배를 실감하는 순간 92년부터 이제 몇 군데 안 남은 전설이 돼 버린 달동네 주민으로 살며 서너 번 총선을 치른 주민으로 이번처럼 허무함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철거민으로 상계동의 북쪽 끝 달동네에 들어와 수십 년을 살던 시어머니는 수년 전 무허가집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서자 입주 능력이 없어 근처의 자그마한 연립으로 옮겨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대출 1500만원이라는 무서운 빚을 끼고서야 마련할 수 있었던 15평 연립이었다. 수십 년을 기다리고 기다려 온 개발은 힘없고 돈 없는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된 상계동에 4.9 총선을 앞두고 또 한 번 이상한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강남 집값은 최대 정점에 이를 만큼 올라 더 이상 오를 전망이 없다, 이제는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싼 노원구와 강북, 도봉구 외에는 집값이 오를 곳이 없다, 그러니 무허가 건물이나 허름한 연립이라도 잡아두는 것이 다른 재테크보다 현실성이 높다'는 정보들이 아파트 부녀회나 조합을 이끌어가는 사람들 중심으로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드디어는 노원구 집값을 강남 수준으로 올려준다는 후보를 밀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동호회나 계모임에서 오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뉴타운 개발을 적극 추진하여 노원구의 집값을 강남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약속과 노원구를 강북 최고의 교육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이야기에, 그 공약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아 볼 생각도 없이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이미 그것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노원 주민들은 뜬구름을 잡아 솜사탕을 만들어 주겠다는 달콤함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총선으로 맞은 첫 번째 직격탄이다.


  
18대 총선 서울 노원병 지역에 출마한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가 9일 저녁 자신의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을 확인한 뒤 지지자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학
홍정욱

언론에 두 번째 뒤통수를 맞다


어쨌거나 그런 첨예한 각축을 염두에 둔 듯 <KBS 스페셜>은 총선 다큐를 기획하고 있다며 상계동 거주 주민인 내게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특정 정당 당원으로 활동하지 않는 서민 노동자를 대상으로 달동네 거주자, 특히 노원 병 사람의 후보 지지 성향을 알아보려는 의도라고 하기에 인터뷰를 허락했다.


잠깐 스치는 길거리 인터뷰는 아니어서, 3월 21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가장 첨예한 쟁점인 '뉴타운'과 '교육 문제'에 대해 상계동에 거주하는 서민중 한명인 나의 의견을 인터뷰하는 형식이었고 총선이 끝나는 주일인 13일(일) 밤  8시에 방영된다고 하였다.


잡급 노동자인 나는 새벽 무가지 배포 도우미와 노동부 사회적 일자리인 방과 후 방문학습

도우미를 하는 생계형 가장이다. 지하철 역 근처의 신문 아르바이트 광경, 집안 모습, 저소득층 아이를 가르치는 현장까지 촬영해야 한다기에 학생 집에 미리 양해를 구했고 비교적 자세하게 인터뷰와 촬영이 병행되었다. 하지만 내 촬영분은 결국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KBS는 사전 후보자들 지지 조사를 통해 진보신당 공동대표인 노회찬씨 당선을 염두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것 같다. '어떤 패배-노회찬과 상계동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1시간동안 방영된 방송에서는 노회찬의 패배 원인이 집값이 올라가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의중을 읽어내지 못해서라는 쪽에 치중되다 보니 뉴타운의 허구성, 삶터에서 밀려날 걱정을 하는 사람의 시각은 다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내게 또 하나의 아쉬움을 남긴, 총선이 내게 날린 두번째 직격탄이다.

 

내가 노회찬과 진보신당을 지지했던 이유


나는 사실 정치에 그다지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내가 노회찬을 지지했던 이유는  시민기자로 취재 활동을 하며 장애인 행사, 호주제 폐지 등 국민의 민의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노회찬 의원의 모습을 늘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들이 내세운 두 가지 공약의 허구성을 인식하고 있는 나로서는 노회찬씨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에서는 주거와 교육 낙후지역인 상계동에 두 가지 공약을 내세웠다.


첫 번째는 '뉴타운 정책을 통해 집값을 강남 수준으로 높여주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상계동을 최고의 교육 도시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두 정책은 출발점에서부터 나와 같은 서민이 대부분인 달동네 주민을 위한 것은 아니다.


'주택정책'은 집값이 약한 강북의 집값을 강남 수준으로 올려 투기와 빈부 차이를 부추기는 그런 정책이 아니라 집을 철저한 주거 개념으로 바꾸려는 것을 기본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주택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의 공약이 실천에 옮겨진다고 해도 수 십년 살아온  양지마을 사람들이나 당고개 주변의 8평짜리 무허가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 몇 푼을 손에 쥔 채 더 열악한 주거 지역을 찾아 외곽지대로 밀려 나가게 될 것이다. 나처럼 15평 연립에 사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이고.


'교육 정책'은 또 어떤가? 사실 상계동만큼 개발이 가져 온 양극화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당고개역에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와 무허가 판자촌이 공존하고 강북의 강남이라는 교육열을 자랑하는 중계동을 기점으로 학교 교육 외의 시간에는 고아처럼 그대로 방치되는 아이들과, 아직도 고아원이 남아있는 동네가 바로 상계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내세운 교육 도시화라는 것이 특목고, 자율형 고등학교, 외국어 고등학교 같은 귀족학교를 상계동에 더 많이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던가? 그 공약 역시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달동네의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두 정책 모두 낙후된 노원을 강남의 아류로 만들어 있는 사람들의 입맛을 맞춰주겠다는 이야기니, 모두를 위해 삶의 질과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된 후 공시지가가 올랐다는 이유로 의료보험 수가를 비롯, 세금이 올랐던 것을 사람들은 잊었는가 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젊고 능력과 패기가 있으며 자본의 논리를 알고 그 자본의 수혜를 넉넉히 받은 홍정욱 개인이 지닌 행운이나 그가 지닌 능력을 폄훼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사회화되지 않은 개인의 특출한 능력, 노동자와 평등한 방법으로 파이를 나눌 생각이 전혀 없는 자본가적 사고, 사회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의 거대 자본은 서민인 내겐 그림에 떡이 될 수밖에 없음을 난 경험상 알고 있다. 가난을 겪어 보지 않은 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도 굶주려보지 않은 이는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으로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고통을 절대 알 수 없다.


평범한 서민이었던 나만해도 가장 아래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기 전까지도 내가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구성하는 노동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정체성과 노동자의 배고픔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노동자의 배고픔을 알아 '80'에 속한 노동자와 함께 세상을 바꿔나갈 여지가 보이는 노회찬을 지지했던 것이다.


  
노회찬,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상임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18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을 당직자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노회찬

더는 잃을 건 없지만 이제 시작일 뿐인 고통


서민  밀집지역이라 나처럼 자신들의 처지를 알고 노회찬을 지지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뜬 구름을 잡아 솜사탕을 만들어 주겠다는 달콤한 공약에 대부분 서민들이 자신의 처지를 잊었고 귀마저 무뎌진 까닭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에 유학해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조기유학 1세대, 기득권이 지닌 자본의 혜택을 모두 누린 상위 3%에 속한 사람이 일용노동자, 무허가에서 떨려날까 전전긍긍하며 밤을 새워야 하는 서민을 위해 과연 무슨 힘을 어떻게 실어줄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황금마차라고 착각한 신데렐라의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는 진실과 대면하는 순간 꿈에서 깬 많은 이들은 희망이 사라져 버린 더욱 가혹한 현실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한 대가이니 비싼 수업료를 수년 동안 내며 수많은 나날 눈물을 뿌릴 밖에. 두 번의 직격탄을 맞은 내가 더 이상 잃을 것은 없겠지만 상처가 곪는 고통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이다.


4월 14일 아침 8시 30분경 상계전철역에서 무가지를 돌리고 있던 나는 낙선 인사를 건네러 온 노회찬 후보를 만났다. 연두색 점퍼 차림으로 노점상들에게 악수를 건네는 그는 조금 피로해 보였다.


사실 총선 전 거리와 음식점에서 노회찬씨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박중훈과 인사차 상계역에 들른 노회찬씨, 당고개 음식점에 인사하러 들른 노회찬씨, 상계역서 명함을 건네던 노회찬씨를 보면서 난 내 속내를 드러내거나 호들갑스럽게 악수를 하며 호의를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패배로 생각이 복잡할 그에게 오늘 나는 처음으로  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노회찬과 상계동 사람들>을 봤느냐? 나도 사실은 그 프로그램을 위해 인터뷰를 했었다. 아쉽게도 내가 인터뷰한 내용은 방영되지 않았지만 승리와 패배를 떠나 노원을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서민들 모두의 바람이 집값 올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라. 정말 노원의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씀하신 이야기 뜻 잘 알겠다"라고 말했다. 과연 4년 뒤 노회찬은 다시 노원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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